安井春知, 1653年(承應二)-1689年(元祿二)
紀州 和歌山에서 태어나다. 이름은 春知, 俊知로 記錄된 자료도 있다. 三十六세 年長의 二世安井算知의 緣者로 알려진다, 算知의 實子 知哲보다는 九살 아래다. 安井家過去帳에 보면, 春知가 算知의 養子가 되기는 하나 部屋住, 家督相續無의 조건으로 되었다고 한다...
1674年(延補二)에 井上因碩(道砂)와 함께 御城碁에 初出仕하고,1686年(貞享三)까지 총 七局을 두었다. 御城碁에 出仕하기 위해 算知와의 養子緣組를 했으나, 위의 史料에 의하면, 算知가 知哲을 후계자로 굳혀두었을 可能性이 크다. 1689年(元祿二)三月二十七日, 三十七세로 죽다.
本因坊道策은 圍碁史의 傑出로서 자신의 生涯의 名局은 春知와 二子番으로 두어 一目을 敗한 바둑이라고 서슴치 않고 추천한다. 그런 바둑은 前來에도 없었고 後來에도 없을 것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道策은 御城碁에 初出仕한 후계자 道的을 相對로 바둑을 두는 등 早熟한 天才 道的과의 對局이 많았다.
御城碁에서 道的 唯一의 敗局은 春知의 黑番 對局이었다.
大局을 보면서 和戰兩樣의 柔軟한 迂廻的 打法은 道策, 道的의 高手에서나 있는 일이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春知의 바둑은 거의 道策, 道的의 수준에 접근했다고 하겠다. 春知를 제외하면, 安井家에서는 算知名人과 四世仙角이 相當한 實力者로 活躍했는데 三世安井知哲보다는 다들 棋力이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