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橋杵三郞, 1836年(天保七)―1902年(明治三十五)
旗本의 次男으로 태어나다. 本因坊秀和에 入門, 秀甫보다는 二년 年長이었다. 方円社 設立의 同志로, 水谷縫次, 小林鐵次郞, 酒井安二郞과 나란히 方円 四天王으로 池目되었다.
方円社 設立時에는 各家元과 方円社가 서로 對立하고 있었는데, 本因坊秀元이 他 家元들과 합세하여 秀甫의 免狀을 取消하려고 하자 高橋杵三郞은 스스로 五段을 返納했다. 任挾의 氣風에다 富者여서, 水谷縫次의 七段昇進에 異意를 제기하여 十番碁를 둔 것도 시기가 적절하여 世間의 注目을 喚起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려서부터 공부에는 열심이어서, 後年 [定石博士],[生碁戰]으로 불리우고, 그의 精通 行馬에는 秀甫도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高橋는 晩年에는 橫浜에서 碁席을 열었는데 그의 敎授法은 當代 第一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