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星因徹, 1810年(文化七)-1835年(天保六)
肥後國 菊池郡에서 태어나다, 幼名은 千十郞. 十二세 때 江戶에 나가 井上因砂因碩의 門下가 되다. 因誠이라 改名. 그後 幻庵因碩의 門下가 되어 十八세에 三段이 된 후 이름을 因徹로 改名한다. 因徹이란 이름은 服部因淑, 幻庵因碩을 따른 것으로 三代次 因徹이 된다. 將來를 囑望받고 있었으나 특히나 病氣가 많았다고 한다. 伊藤松和가 對局을 끝내고 退出할 때에 옷소매가 碁盤에 닿는 것을 보고는 因徹이 조용히 碁盤을 딱아 松和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할 정도로 성격이 纖細했다고 한다.
座隱談叢에서는, 홀로 등불을 대하고 앉아서는 밤이 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혹은 扁舟를 墨江에 띄워두고는 碁局에 달이 지는 것도 몰랐다... 라고 묘사하고 있다.
기록으로 본다면, 因徹은 短驅肥大, 眉太頰豊, 爛爛한 眼光으로 범하기 어려운 威風이었다는 丈和와는 아주 對照的이다.
1834年(天保五) 二十五세에 七段, 實力은 八段이라 했다. 幻庵因碩의 實質的인 후계자로 指目되고 있었다. 이 무렵, 幻庵과 둔 因徹의 先番四局은 因徹이 모두 이겼고, 因徹이 丈和와 둔 先番二局도 모두 因徹의 優勢였다고 한다. 翌年 松平家의 碁戰에서 名人碁所 丈和와 對局할 機會가 있었는데 이때 幻庵은 주저함이 없이 因徹을 丈和의 상대로 내세웠다.
序盤은 因徹이 優勢한 바둑이었으나, 有名한 丈和의 三妙手에 걸려 因徹은 理性이 마비되었고, 丈和의 破格的인 豪力에 무릎을 꿀고 말았다. 因徹이 終局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으므로 이 對局을 [吐血의 局]이라 하고 古來로 有名한 名局으로 손꼽힌다.
翌閏七月, 죽음을 예견하고 幻庵과 둔 師弟對局이 因徹의 絶局이 된다.
一個月後 二十六세의 젊음으로 이 世上을 떠난다.
因徹이 對局 중에 나오는 死活傑作을 모아 저술한 [玄覽]은 古今의 名著이다.
그 밖에 [手談五十圖]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