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策因碩, 1774年(安永三)-1810年(文化七)
備後國 深津郡 市村(廣島縣 福山市 藏王町)의 本庄屋 佐藤久兵衛定治의 長男으로 태어나다. 幼名은 知夫 또는 民治라고 한다. 後에 春策이라 칭하다. 어려서부터 神童이라 칭송이 높았고, 十二세 때 福山 藩儒臣 大田全齊에게 才能을 認定받고, 爭碁好의 藩主阿部正倫(寺社奉行)의 귀에 들어가 天明六年 十三세 때 儒臣管茶山의 推擧로 隣國 安芸國 出身의 七世井上因碩 因達에 入門하다.
1794年(寬政六), 四段 時節에 七世井上因碩 因達의 후계자가 되고,
元丈, 知得 등 四家의 후계자 중에서 가장 빨리 十人扶持를 받는 사람이 된다.
1805年(文化二), 七世因碩因達의 死去로 八世井上因碩이 된다. 文化四年에 上手七段. 御城碁에서는 寬政七年(1795)부터 四年連으로 勝利한다. 御城碁十五局의 勝敗는 本因坊烈元과의 二勝0敗를 포함하여 八勝五敗二無.
1810年(文化七)에 急逝한다. 享年三十八세, 法名日逞.
春策因碩의 急死로, 唐津藩士 山崎因砂가 春策의 딸과 養子緣組를 맺고 九世井上因碩因砂에 등극한다. --春策의 아우 四世佐藤久兵衛의 子孫인 佐藤和紀의 진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