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보 烈元, 1750年(寬延三)-1808年(文化五)
본성은 山本, 한때 澤村 성을 쓰기도 했다. 토쿄 數奇屋 측의 조장 집에서 태어나다.
어려서 察元의 문하에 들어가다.
1770年(明和七) 윤6月27日, 21세 六段, 스승인 察元이 기소를 임명받은지 4일 후에 후계자로 된다. 그해 어성기에 첫 출사하여 八世林門入(祐元)에 흑으로 4집승. 어성기는 35年간 최다 기록인 46국을 두었다.
1788年(天明八) 1月, 察元의 죽음으로 그해 4月8日에 가독을 상속하고 十世 혼인보가 되다. 이때가 39세 上手格(七段). 후계로 정한 소년 河野元虎가 1796年(寬政七) 11살에 죽으므로서 2년 후에 문하의 宮重樂山(元丈)을 정식 후계자로 하다.
1808年(文化五) 59세로 병사하다.
察元은 혼인보 후계자를 각 가원의 후계자 앞에 세우는 등 혼인보家의 격을 크게 높였다. 察元과 春硯因碩과의 고집 다툼은 혼인보家와 야스이家에까지 미친다. 烈元의 앞에 야스이家의 외가이자 坂口仙德의 아들인 14세 소년 七世安井仙知가 등장한다.
道知가 죽은 후, 3대에 걸친 혼인보家의 쇠퇴기와 바둑계의 혼란기, 大仙知-元丈知得 시대의 융성기, 신구세대의 교대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