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의 탄생 기독교의 모든 이야기는 기독교가 생겨나기 수천년 전의 고대부터 이미 존재했던 흔한 이야기 들이다. 예수 이야기는 중동의 고대 문화, 군사 강대국이었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의 신화 이야기들을 유대인들이 요리조리 짜집기하고 수정 가필한 다른 이야기일 뿐이다. 예수의 탄생, 설교와 가르침, 십자가, 부활, 승천 심판 등의 모든 것들도 그저 고대 중동과 유럽의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시스, 호루스,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바커스, 아도니스, 클레오메네스, 바기오라, 미트라, 조로아스터... 그리고, 당시 엄청나게 널려있던 다른 많은 죠수아(예수)들, 헤르메스, 히에로판테스... 등의 부활신인(神人) 이야기들을 유대인들이 짜집기해 만든 것이 바로 예수 이야기다. ♣ 십자가와 부활 이야기 기독교가 생겨나기 수백, 수천년 이전부터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한 구세주를 기리는 성찬식과 예배가 성행하고 있었다. 아래 그림의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을 보면 누구라도 예수라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실은 고대 십자가 신앙의 하나인 오시리스 신(神)이다. ♣ 성모 마리아 이야기 예수와 마리아의 성화는 이집트의 이시스와 호루스 母子에서 그대로 빌려온 것이다. ♣ 포도주 이야기 디오니소스 神의 여사제가 바위에 지팡이를 꽂았다. 한쪽은 물이 한쪽은 포도주가 쏟아져 나왔다. -에우리피데스, <바케> BC 5세기- 예수께서 이제는 퍼서 잔치맡은 이에게 갖다 주어라 하셨다.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요한복음 2장- 디오니소스와 여사제들 대신에 예수와 유대인 여인네 몇사람으로 완벽히 그대로 표절되었다. 당시 유럽과 중동 일대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디오니소스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 성찬식 이야기 예수 이야기를 유대인들이 긁어 모아다가 짜집기하기 이전 수백, 수천년부터 성찬식은 있어 왔다. 미트라, 디오니소스교의 99%는 모두 성경이야기로 넘어왔던 것이다. 성찬식 기록을 보자! 너 또한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기 위해 내 피를 마시거라. 그렇치 않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미트라교의 비문 유적에서- 마시거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하려고 많은 삶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마태복음 26장- 미트라교의 성찬식 장면이 묘사된 유물 이 유물은 최근 보스니아의 코냐카(Konjiaca, Bosnia)에서 발굴되었다. 왼쪽은 까마귀와 페르시아인, 오른쪽은 군인과 사자가 그려져 있다. 지금도 성당과 교회에선 이 미트라교(페르시아에서 전래된 종교)의 성찬식을 그대로 거행하고 있다. 신부나 목사의 의상도 거의가 미트라교나 고대 중동의 종교 사제들의 복장이 계승된 것이다. 크리스마스 축제도 예수 탄생과는 0%도 관계없는 100% 미트라교의 축제인데도 지난 2000년간 교회는 날짜까지 정확히 지키면서 이 행사를 치르고 있다. ♣ 십자가 이야기 아나니아의 아들 예수, 요셉의 아들 예수, 바기오라, 클레오메네스, 그리고 수많은 예수(죠수아)들이 기적을 베풀고 군중을 선동하다 로마로 부터 처형 당했다고 전한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에 기록된 예수가 혹시 그 구세주 예수인가 착각하기 일수다. 당시는 개나 소나 10명중 네다섯은 이름을 죠수아(예수)라고 지었다. 아나니아의 아들 예수도 기적을 베풀고 다녔다. 유대 제사장들이 그 예수를 로마에 넘겼다. -요세푸스 AD75-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끌고가 빌라도에게 넘겼다. -마가복음 15장- 아나니아의 아들 예수는 물론 로마의 극형을 받고 죽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빌라도에게 죽었다는 사실은 없다. 프톨레미는 클레오메네스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것을 확인하고 혹시 숨이 붙어있나 채찍으로 때려본 후 시체를 다시 매달아 놓을 것을 명령했다. -플루타크 영웅전-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으로 충분히 후려갈긴 후 십자가에 매달라고 명령했다. -마가복음 15장- ♣ 신의 아들 사람들은 클레오메네스야 말로 정말 <신의 아들>이었구나 하고 고백했다. -플루타크 영웅전- 지켜보던 백부장은 예수야 말로 정말 <신의 아들>이었구나 하고 고백했다. -마가복음 15장- 고대사회에서 황제에 대한 칭호나 신화 속 인물에 신의 아들이란 단어는 너무도 친숙한 말이었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신의 아들로 칭호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당연한 유대인들의 표절작업 중 하나다. ♣ 세례 이야기 세례(침례)하면 기독교의 전유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세례는 이집트 호루스 신앙의 의식인데 이를 유대인들이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인더스 문명이나 불교에도 세례, 침례는 당연히 있었고, 우리민족에도 있었다. 세례는 물이 있고 종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있던 의식이다. 호루스는 처녀에 잉태하여 별을 인도를 받은 박사들의 축복을 받고, 30세가 되어 세례를 받고, 12제자를 거느리고,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했다. 이집트 벽화와 기록에 있는 내용이다. 호루스,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바커스, 아도니스 등 모든 종교에서 새신자가 들어오면 세례를 베풀었다. -테르툴리아누스, 세례에 관하여- 아래 그림은 왼쪽의 토쓰(Toth)와 오른쪽의 호루스(Horus)가 소백(Sobek)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이다. 문화적 밑바닥도 없는 떠돌이 유대인들이 이 마력소스를 가만 놔둘리가 있겠는가? 예수의 세례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가져간 것이다. ♣ 기독교 공인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신앙적 체험을 통해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의 여러 종교(미트라교, 태양숭배...)들을 압살하기 위해 기독교를 공인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착각은 자유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로 개종도 하지 않았고 끝까지 태양신을 숭배했다.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한 것은 -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은 절대 왕권 강화의 최적의 수단이었고 - 기독교는 미트라교를 99% 수용한 종교였으므로 다른 종교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로마의 상황으로는 왕권을 지키기 위해선 기독교를 공인하는 수 밖엔 없었다. 콘스탄티누스가 다신교인 미트라를 그대로 두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면 아마도 암살 당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미트라교와 99% 동일하면서도 여러 신이 아닌 오직 하나의 신을 주장하는 기독교를 정치에 이용하면서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 왕권강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시쳇말로 정치 9단이었구랴~ ♣ 에필로그 종교가 어떻게 생겨났던 그게 뭐가 중요한거여? 짜집기를 했던 신화를 빌려왔던 암튼 종교는 종교인 것이여!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초등학생만 되면 다 알게 되지만 그래도 그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또 그들의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하고 믿게 하는 걸. 사람사는 곳에는 어떤 형태든 종교는 생겨나는 법이여. 그저 신(神)이 있다고 맹신하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인생들이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