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聖書, Bible)
그리스도교 성전(聖典). 영어 바이블(Bible)의 어원은
고대에 종이 원료로 사용하였던 파피루스의 심(心)을 뜻하는 그리스어 비블로스(biblos)에서 유래한다.
이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에 글자를 기록한 것을 비블리온(biblion)이라고 하여 책이라는 뜻이 되었다.
그 복수형이 라틴어로 바뀌어서 비블리아(biblia)가 되었고, 특히 거룩한 책을 나타내게 되었다.
성서에는 구약성서(舊約聖書;Old Testament)와 신약성서(新約聖書;New Testament)가 있는데
약(約,Testament)은 계약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Coena Domini) 기록에는
십자가의 피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새 언약이 된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22:15∼20).
그리스도의 언약에 관한 책을 신약성서라 하고 구세주에 대한 준비서로서 쓰이던 유대교의 경전을
성서로 채택한 것이 구약성서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구약성서 모두를 정경(正經·Canon)으로 삼는다.
신교에서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모두 66권이지만 가톨릭에서는 외경(外經)을 포함하여 73권이다.
이스라엘의 역사
구약성서 각 책의 성립과정과 그 구성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집트의 노예였던 히브리(헤브라이) 여러 민족은
BC 13세기에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찾아 이집트를 탈출하였다.
이 어려운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모세는 그들의 공통된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으로 경배할 것과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여
조상과 약속한 땅 가나안을 주신다고 설파하여 민족 유일신교와 선민신앙(選民信仰)의 기초를 닦았다.
모세는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남부 최대의 오아시스 도시 여리고를 눈앞에 두고 죽었지만
그의 유지(遣志)는 여호수아에게 계승되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의 길로 향했다.
이스라엘 12지파는 각 지파의 지도자인 사사(士師; 판관)를 중심으로 협력하면서
가나안 지역을 정복하고 각 지파가 나누어 가진다.
이것이 BC 12∼BC 11세기의 사사시대이다.
블레셋이 서쪽 해안을 점령함으로써 가나안은 블레셋의 땅 즉 팔레스타인이라 불린다.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모든 지파를 통솔해 나갈 왕의 출현이 요청되자
12지파의 종교연합은 사울을 왕으로 삼아 국가를 형성하였다.
사울은 싸움에 패하여, 재위 11년인 BC 1000년 무렵 자결하고 왕위는 다윗에게 이어진다.
다윗은 블레셋인을 무찌르고 전 가나안을 정복하여 그곳에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세웠다.
이 안정된 이스라엘왕국을 이어받아
BC 960년 무렵부터 40년간에 걸쳐 통치하고 내정과 외교에 수완을 발휘한 사람이 솔로몬왕이다.
그는 예루살렘에 성전과 왕궁을 짓고 전국에 견고한 요새도시를 건설하였다.
이 양대 이스라엘의 황금시대도 솔로몬이 죽은 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싸움으로 인하여
남쪽의 유대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왕국으로 분열하여 국력은 점점 쇠퇴하였다.
BC 721년 앗수르(앗시리아)는 이스라엘왕국을 점령하였다.
앗수르 다음에 나타난 바빌론(바빌로니아)은 BC 586년에 유대왕국을 멸망시켰다.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수많은 유대인들은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것을 가리켜서 바빌론 노예생활라고 하며, 이스라엘 종교사는 큰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BC 538년 바빌론에 이어 지중해 세계에 영토를 확장한 페르시아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킨다.
BC 331년 페르시아가 멸망한 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유대교를 보호한다.
BC 202년 이후 수리아(시리아)의 셀레우고스 왕조는 유대교를 엄청 박해한다.
BC 160년 무렵 유대는 독립전쟁에 의하여 하스몬 왕조를 세우나
BC 63년 다시 로마에게 점령되어 예수의 시대에 이른다.

구약성서의 탄생과 각 책의 성립
구약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말이며 유대교에서는 이것을 타나크(Tanach)라고 한다.
율법(Torah), 예언서(Nabi'im), 제서(諸書, Chethubim)의 머리글자를 합한 것이다.
율법이란 구약성서 최초의 5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한다.
창세기에는 천지창조,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12족장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두번째의 출애굽기에서 다섯번째의 신명기까지는 모세의 출생에서 죽기까지의 생애와
시내산과 그 밖의 지역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내린 율법으로 엮어져 있다.
이 5권의 책은 모세오경 또는 모세의 율법이라고 하여 BC 400년 무렵 유대교 최초의 경전이 되었다.
창세기, 출애굽기의 전승(傳承)은 대부분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하는 야위스트(J, Jahwist),
엘로힘이라고 하는 엘로히스트(E, Elohist)라는 이름이 붙여진 자료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앞의 것은 BC 10세기 중엽, 뒤의 것은 BC 8세기 중엽에 성립하였다.
J는 민족신앙으로 일관되어 있고, E는 여기에 윤리적 종교관이 더 있다.
출애굽기 20∼23장에 있는 모세의 십계명 계약의 글은 E의 저자가 쓴 것이다.
BC 621년에는 요시아왕에 의하여
신명기법(D, Deuteronomium)이 정해져서 신명기 5∼25장과 28장에 놓이게 되었다.
레위기, 민수기는 BC 500년 무렵 제사장들에 의하여 정리된 제사법전(P, Priester Kodex)인데
이것의 저자가 율법 전체의 편찬자이며 5권 각 부분에 가필하였다.
이와 같이 율법은 J·E·D·P의 4가지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예언서는 BC 300년 무렵에 이르러 편집되었으며, 유대교 제2의 경전이 되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3편의 대예언서, 호세아 이하 12편의 소예언서를 편찬할 때
그 앞에 놓인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등 4권을 전예언서(前豫言書)라 하고
모두 선지자(예언자)의 이름으로 제목을 삼았다.
선지자란,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하는 지도자로서
모세와 사무엘 등을 지칭했다. 이러한 선지자 15명이 전한 말이 기록되어 성서에 수록되었고
이들을 기술적 선지자(Canonical Prophets)라고 한다.
아모스의 출현은 BC 760년 무렵인데
이스라엘과 유대사회의 혼란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하나님의 징벌을 경고하였다.
민족신앙이 단순히 여호와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돕는다고 한 데 반하여
하나님은 의(義)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백성도 따라서 의로운 백성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길은 의식이 아니라 공의(公義)를 세상에 펴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종교에 명확한 윤리적 성격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아모스를 비롯한 호세아, 미가, 이사야, 스바냐,
예레미야 등 바빌론 노예생활 이전의 선지자들인데 이는 유대교 제2의 특색이 되었다.
나훔, 하박국 두 사람은 민족신앙을 고취하였으며 여호와의 도우심을 예언하였다.
에스겔은 노예생활 이전부터 노예생활 시대에 걸쳐서 예언하였으며
아모스 계열에 서면서도 노예생활중에는 유대인을 격려하였다.
이사야 40∼55장에 기록되어 있는 제2이사야의 예언은 위로와 격려의 예언이며
의로운 생활을 하여야만 이 여호와의 구원이 보장된다고 하였다.
이사야에는 고난을 당하는 종의 노래가 있는데 백성들의 고난는 속죄의 고뇌라고 보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를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으로 간주하고 있다.
노예생활 이후의 선지자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노예생활 이후의 신생 유대의 사회악을 비판하면서도 예루살렘의 부흥을 격려하였다.
전예언서 중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고대의 영웅이야기를 짜맞춘 과장된 것이다.
사사시대의 역사는 각 지파의 사사기록을 편집하여 만든 사사기의 내용이 신빙성이 있다.
사사기 5장의 드보라의 노래는
BC 1150년 무렵 전투를 목격한 사람이 지은 노래로서 구약에서 가장 오래된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사무엘은 12지파의 정신적인 지도자 사무엘의 인정을 받아 왕이 된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이고
열왕기는 솔로몬 이후의 열왕들의 기록이다.
솔로몬 이후는 왕조의 서기국(書記局)에서 기록관리를 했으므로 자료의 신빙도가 높다.
이 4편의 역사서는 선지자의 윤리성을 받아들인 역사관에 서 있다.
제서는 노예생활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서 성전과 회당 등에서 사용되고 있었으나
유대교의 정경으로 된 것은 기원 후의 일이다.
한국어판성서의 배열은 율법, 예언서, 제서의 순서와는 다르다.
이는 BC 3세기 헤브라이어 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었을 때의 순서에 유래한다.
72명의 학자들이 번역했다고 하여 셉투아긴타(Septuaginta; 70인역 성서)라고 일컬어진다.
여기에는 뒤에 정경에서 제외된 구약외경(舊約外經)과 위경(僞經)도 포함되어 있다.
교회는 이 셉투아긴타를 토대로 라틴어판 불가타 성서(Vulgata聖書)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리스도교회의 구약성서의 배열을 결정한 것이다.
노예생활 이후의 유대는 페르시아, 그리스 초기의 유대교 보호정책 아래 종교국가가 되어
제사장을 수장으로 하면서 발전하는데 이는 예언서의 편찬에 따른 정경의 결정과
여러 종류에 걸친 종교문서의 성립에서 이러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예언서 가운데에서도 요엘, 오바댜, 요나, 스가랴 등은 문학적 성격이 강하다.
룻기는 문학적인 이야기이다.
역대 상·하, 에스라, 느헤미야는 역대기 편자라고 하는 BC 4세기 역사가들의 일련의 편저이다.
역대 상·하는 노예시대와 노예 이전의 역사를 고쳐서 새로운 역사관으로 재편집한 것으로써
역대 왕들의 사적이 하나님에게 충실하였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배반했는가라는 관점에서
참회사적(懺悔史的)으로 회고, 반성하고 있다.
노예생활 이후의 평화주의적·반전주의적(反戰主義的) 입장은 다윗에 대한 평가에서 잘 나타난다.
이 이스라엘 최대의 왕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것은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며
성전은 평안과 안정의 시대의 왕 솔로몬에 의하여 완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역대상 22:6∼10).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BC 5세기 중엽에 페르시아에서 귀국한 학자와 총독인데
이 두 사람에 의해 조직체로서의 유대교가 성립하였다(BC 444년).
이 두 사람의 수기(手記)가 에스라, 느헤미야에 자료로서 사용되었다.
욥기, 잠언, 전도서는 지혜문학이라고 한다. 노예생활 이후의 유대교의 중심은 제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귀족계급이 되어 민중들로부터는 멀어져 갔다.
이때 일반신도의 지식계급에서 지혜의 교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와
성전과는 별도로 회당을 전국 각지에 세워서 유대교 일반민중의 지도자가 되었다.
유대교는 한편에서는 점령자의 보호정책 아래서 성숙기를 맞고 있었다.
이 정책은 지중해 세계의 끊임없이 동요하는 국제정세 아래서 유대의 평온을 위한 것이었다.
유대를 사이에 둔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의 대립으로 인한 군대의 왕래 등으로
민중의 생활은 압박당하였고, 신앙을 버리고 세속화한 사람들이 증가하고
경건한 유대교도들은 고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선한 자들을 고통받게 하는가 하는 의문이 유대교도들의 마음을 뒤덮고 있었다.
욥기는 완전하고 진실한 욥이 당하는 고뇌를 주제로 한 대화시극(對話詩劇)이다.
회의(懷疑)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로 시작하는 전도서에서 극에 이른다.
유대교, 그리스도교의 성서와는 이질적이라고 생각되는 염세주의, 허무주의가
민중의 마음을 헤아린 한 사람의 지혜의 교사에 의해 글로 씌어졌다.
잠언은 올바르고 경건한 자가 행복을 소유하려면 세상의 지혜와 처세의 길을 알아야 한다 하여
동서고금의 격언을 모아 지혜·근신·소양 등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잠언과 전도서에 솔로몬의 이름을 붙인 것은 솔로몬을 지혜의 왕으로 여겨
사람들의 지혜는 하나님이 솔로몬을 통하여 주었다고 하는 신앙에 따른 것이다.
시편은 아가(雅歌), 애가(哀歌)와 함께 노예생활 이후의 다양한 시문학형식 가운데 하나이다.
시편 150편은 페르시아 시대에서부터 그리스 시대에 이르는
노예생활 이전의 시와 새로 지은 노래를 합하여 3차례에 걸쳐서 편집되었으며
그리스시대 후기에 모세오경을 모방하여 5부로 정리되었다.
시편에는 다윗이 지었다는 것이 많은데 이는 다윗을 노래와 음악의 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시편은 성전에서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가로서
특히 초기에 회당 안에서 부르던 것이 성전예배용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많다.
제1차 편집(3∼41편)에는 탄식의 노래라고 하는 것이 많았는데
이는 욥기로 집약되는 의롭고 경건한 유대교인들의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한 것이다.
제2차(42∼89편), 제3차(90∼150편)로 가면서 신뢰, 감사, 지혜, 문학적인 노래가 점차 늘어난다.
이는 신앙의 동요를 막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공고히 하려는 유대교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지혜의 교사는 율법학자 그룹을 낳았고 그들은 율법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다.
최후의 편집자는 맨 앞에 율법주의의 노래를 넣고
맨 뒤의 5편을 할렐루야(여호와를 찬양하라)의 시구로 마무리하였다.
다니엘은 전형적인 묵시문학이다.
구약의 선지자는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은 거론했으나 내세(來世)는 거론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상은 원래 종교사에서는 보기 드문 철저한 현세주의였으나
그리스 후기 셀레우코스 왕조의 유대교 박해로 유대교도들은 평화주의를 버리게 되었고
동시에 종교사상에도 페르시아적인 종말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악이 지배하는 이 세상이 곧 끝나고 머지않아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사상이다.
다니엘은 구약성서 중 최후에 성립된 문서로 유대의 구원을 종말관에 기초해 쓴 것이다.
BC 165년 경 셀레우코스 왕조의 핍박에 시달리고 있던 유대교도들에게 희망을 불러주기 위해
다니엘은 하나님이 내린 묵시를 꿈의 해몽이라는 형식으로 전파하였다.
메시아의 모습도 다니엘에서 처음으로 묘사되고 있다.
묵시란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시를 말한다.
묵시 문학은 구약 스가랴 후반과 요엘에서도 볼 수 있다.
구약외경과 위경에는 더 많은 묵시문학이 있다.

신약성서의 탄생과 각 책의 성립
현재 형태의 신약성서가 정경으로서 성립된 것은 4세기 아타나시우스에 의해서이다.
2세기 말에는 이미 4편의 복음서가 확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교부(敎父)들의 저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무라토리 단편(Muratorian Canon)에는 200년 무렵 로마교회에서 사용되었던 성서의 목록이 있다.
이 속에는 4복음서, 사도행전, 13통의 바울서신, 유다서, 요한Ⅰ,Ⅱ서, 요한계시록이 들어 있다.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구원에 관한 책으로 여기에는 예수의 말이나 행적뿐 아니라
구세주의 구원이라고 하는 신앙상의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다.
신약성서 문서들의 기록시기는 다음과 같다.
AD 50~51년 : 바울서신 중 데살로니카 전서
AD 55년 : 바울서신 중 고린도 전서
AD 70년 : 마가복음
AD 80년 : 마태복음
AD 85년 : 누가복음
AD 80~90년 : 사도행전
AD 90~100년 : 요한복음
-복음서-
예수의 언행을 전하는 책은 신약성서 중에서 맨 앞의 4편 뿐이다.
복음서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천국의 복된 소식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Synoptic Gospels)라고 한다.
이 세 복음서는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전도활동에서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자료를 사용하여 공통된 관점에서 예수의 일생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전기(傳記)가 아니고 예수의 언행을 바탕으로 하여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저술한 것으로서 각기 다른 입장에서 자료를 다루고 있다.
공관복음서의 마가복음은 가장 오래된 자료인 原 마가(Urmarkus)로부터 만들어졌으며
마태복음, 누가복음도 原 마가자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마태복음, 누가복음에는 각각 원자료(Q, Quelle)라고 이름붙여진 예수의 어록이 있으며
이 밖에 M, L이라 이름붙여진 자료가 있어 이들 자료들을 복음서학에서는 4자료설 이라고 한다.
이들 자료가 마태복음에서는 유대적 입장에서, 누가복음에서는 헬레니즘적 해석에 따라 편찬되었다.
또한 위의 4자료에 앞서 예수의 수제자로부터 전해진 구전자료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저마다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 기초한 설화로 분석하는 양식사적(樣式史的) 연구가
20세기에 복음서학을 한걸음 전진시켰다. 공관복음서가 60∼70년에 저술된 데 반하여
요한복음은 그리스도교가 유럽에 뿌리를 내리고 교회제도가 정비되기 시작한 2세기초에 저술되었다.
초대교회의 장로였던 요한은 스승인 사도요한의 말과 공관복음을 기초로 예수의 활동을 엮었는데
바탕에는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으로서 아들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의 신앙이 있다.
말하자면, 초대교회의 신학을 설파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도행전-
누가복음의 저자가 사도들의 전도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누가는 바울과 전도여행을 같이 한 사람으로 이 책 뒤의 절반은 그가 직접 목격하였거나
본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바울의 사적이 생생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다.
앞의 절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전도행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는 이 부분은 성령의 감화라고 하는 신앙적 색채를 강하게 풍긴다.
-서신(書信)-
바울서신 : 바울은 소아시아의 다소(타르수스)에서 태어났고 로마시민권도 갖고 있었다.
그는 헬레니즘의 교양을 몸에 지닌 유대교도로서 그리고 율법학자로서 바리새파에 속하였으며
율법을 모독한다고 여겨졌던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하는데 앞장선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예수를 만나고 나서 회심(回心)하였고
그 뒤 소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이방인 전도에 헌신하였으며
3차에 이르는 박해하의 전도를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지중해세계의 세계종교로 발전시켰다.
그가 전도한 지역에 사는 그리스도교도에게 보낸 편지 13통은 그의 이름으로 신약성서에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4대 서신이라고 하는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를 비롯하여
데살로니카 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바울이 쓴 것이 분명한 것으로 여겨지나
에베소서와 데살로니카 후서는 바울이 죽은 후 1세기말~2세기초에 쓰인 것으로 보고
히브리서는 바울과 사상을 달리하는 다른 사람이 썼다고 본다.
위의 서신 중에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옥중서신이다.
바울의 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데살로니카 전서인데 복음서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바울의 전도 초기인 50년 무렵에 쓰여진 것이다.
목회서신(牧會書信) :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의 3서신을 목회서신(Pastoral Epistles)이라 한다.
집회 질서에 관한 훈계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서신은 바울이 자신과 전도를 같이 한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목회서신은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중 하나가 쓴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는 제자가 스승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공동서신(共同書信) : 개개 교회가 아니라 여러 교회 앞으로 동시에 보낸 4세기 무렵의 서신들을 말한다.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Ⅰ·Ⅱ·Ⅲ서, 유다서 등 7통의 서신을 공동서신(Catholic Epistoes)이라 한다.
이 서신들은 예수의 수제자와 야고보의 형제 유다의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 신빙성은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서신들을 통해서 1세기말부터 2세기에 걸친 초대 그리스도교 교단의 전개와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상적 발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귀중한 자료이다.
요한Ⅰ·Ⅱ·Ⅲ서는 요한복음의 기록자인 장로 요한이 쓴 것으로 보고 있으나
장로요한과 사도요한의 형제나 제자였던 사람이 함께 쓴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공동서신은 그리스도의 속죄와 하나님의 자신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묘사되어 있어
그리스도교의 중심사상이 이미 이 시대에 움트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 묵시문학은 구약성서의 다니엘 이후, 구약외경과 위경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로마의 압박하에서 신음하는 유대교도의 구원과 소망을 비유적이고 환상적으로 저술한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1세기 말부터 로마의 박해를 받을 때 하나님의 계시 형태로 요한계시록이 저술되었다.
종말의 날에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이는 훗날 그리스도교 재림신앙의 근거로 된다.
성서의 번역
구약성서는 일부 아람어로 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헤브라이어가 원문이다.
원문은 자음만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헤브라이어가 사어(死語)가 된 뒤에는
그 본문을 정확히 전승하기 위해 마소라 (전승) 학자들에 의해 모음기호가 개발되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마소라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9세기의 것이지만
1947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서 사해(死海)의 서해안에서 발견된 사해문서에는
BC 3세기 중엽부터 1세기의 것도 포함되어 있다.
구약성서는 로마교회에서 그리스어 번역 셉투아긴타를 기반으로 라틴어로 번역되었으나
405년에는 헤브라이어 사본에 기초한 개정번역본이 완성되었다.
신약성서 각권의 원문은 그리스어이지만 원문은 남아 있지 않다.
전해진 많은 사본을 바탕으로 고대번역본과 교부들의 인용을 참고하면서
원본 복원작업이 오랜 교회역사를 통하여 계속되고 있다.
현재 일반에게 보급되어 있는 것은 네스틀레알란트판(25판, 1963), 타스카판(1964) 등이다.
그리스어 사본은 단편을 포함하여 5000편 이상이 있으며 파피루스, 대문자, 소문자 사본으로 나누어진다.
파피루스 사본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은 125년의 라일런스 파피루스 457이다.
파피루스 사본의 대부분은 단편이지만 체스터 비티 파피리, 보드머 파피리 등 장문(長文)으로 된 것도 있다.
대문자 사본은 4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 가운데 중요한 시나이 사본, 바티칸 사본, 에프라임 사본, 베자 사본 등이 있다.
신약성서는 4세기 말 그리스어 사본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구약과 합해져서 불가타라고 일컬어졌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각국어로 번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M. 루터가 구약·신약의 원어를 독일어로 번역한 이래 각국에서는 자국어로 번역하여
신도들이 직접 성서를 읽을 수 있게 하였다.
맨 처음 한국어로 번역된 성서는
1790년대에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생활에 필요한 일부분을 번역한 것이었으나
본격적인 성서의 한국어 번역이 이루어진 것은 개신교가 들어오면서 부터였다.
1882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선교사 J. 로스 목사와 평신도 이응찬, 백홍준 등이 누가복음을 번역했다.
1883년 이수정(李樹廷)이 한문으로 된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일본에서 가지고 들어와서 토를 달아
현토 한한신약성서(懸吐漢韓新約聖書)를 간행하였으며
1884년 미국 선교사가 입국할 때 마가복음을 번역하여 가지고 들어왔다.
1887년에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되었고
1900년 5월 신약성서, 1911년에는 구약성서가 완역되어 성경전서로 합본, 간행되었다.
천주교에서는 1910년에 4복음서를 셩경(四史聖經)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는데
이것은 라틴어 성서를 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었다.
1922년에는 사도행전이 종도행전(宗徒行傳)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되고 1941년에야 모두 번역되었다.
1959∼1963년 헤브라이어 구약성서가 13권으로 번역되어 1971년까지 천주교의 공인역본으로 사용되었다.
번역된 성서의 개역과정은 번역완료 직후부터 계속 이루어져 개신교측 성서공회에서는
1912년 개역위원회를 조직하여 구약번역의 개역을 시작하고 1937년에 개역성서가 간행되었다.
이 번역판은 1956년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수정을 거쳐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광복 후에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서 보급의 필요성이 대두하여
1960년 9월부터 새 번역 작업을 시작, 1967년 12월 새 번역성서가 간행되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성서의 자국어 번역 및 신구교 공동번역사업 장려정책이 결정되자
1968년에 천주교와 개신교 합동으로 신·구약성서 공동번역위원회를 조직하고
1971년 신약성서, 1978년에는 신약·구약 및 외경까지 포함된 공동번역성서가 간행되었다.
이제 한글성경은 활자본을 넘어서 아래와 같은 한영 음성성경까지 보편화되고 있다.

출처 - 성서(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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