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박정희 대통령의 STATECRAFT(국가통치능력)를 읽어라!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을 질타해 오늘의 그들을 만들어 준 박정희의 STATECRAFT를 공부하라!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가장 순결한 도덕의식이 가장 비열한 위선으로 전도되는 역사의 심판을 생각하라!
박정희, 그는 조국의 명운을 성찰하면서 잠 못이루며 원대한 국가중흥의 마스터플랜(Master plan)을 세운다.
의식혁명→경제발전→조국근대화→핵개발→민주주의→조국통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강렬한 공적열망! 치열한 문제의식! 청렴헌신적 자세! 현장장악! 끊임없는 독려!
이것이 바로 세계가 놀라고 칭송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STATECRAFT 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하는 데, 일본은 100년, 미국은 180년, 영국은 200년...
그러나 박정희는 30년 만에 1만 달러를 달성해냈다.
초인의 탄생!
세상엔 초인적 의지와 천재적 역량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난세에 영웅난다는 말이 있듯, 박정희는 난세에 태어나 인고의 세월을 떨치고 겨레를 가난에서 구해내
선진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1인당 GNP 78달러였던 세계 최빈국 한국을 굶주림과 혼돈에서 건져내기 위해 목숨걸고 앞장서 5.16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주의·자본주의를 누릴 수 있는 바탕을 다진 박정희에게
친일과 독재의 올가미를 씌우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목으로 역사를 거꾸로 세웠습니다.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 실용정부 등 화려한 수식어를 내세운 치졸무쌍 작태는
나라를 지난날 맹목과 가난의 질곡으로 다시 몰아넣으려 합니다.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
박정희는 일본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반발, 초등학교 교사직을 버렸습니다.
그에겐 무엇보다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이란 근대적 선진문화였습니다.
그즈음 선진문화 하나가 일본군사체제였기에 만주군관학교로 달려 갔습니다. 적진 소굴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는 불을 훔치러 간 ‘프로메테우스 행보’입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일본육군사관학교에서 일제대륙침략선봉 황야의 늑대
이시하라 간지, 천황의 여우 기시 노부스케 두 걸물의 만주국건설 산업경제개발방략과 근대적 국가통략을 공부합니다.
혁명 그리고 산업화! 근대화! 민주화!
4.19로 집권한 민주당은 이승만 시대보다 더 무능 부패했습니다.
무너지는 법질서 속에서 시민들은 ‘배고픈 자유’의 허망함에 절망했습니다.
6.25를 겪은 국민은 북한 김일성을 따르자는 공산선동에 “군은 나서지 않고 뭣 하느냐” 나무랄 정도였습니다.
박정희와 젊은 장교단은 이 국민여망과 시대정신에 응한 것입니다.
민주주의 탄생지인 서구와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제도적 가치관이 다른 신흥개발국가 한국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하려면
먼저 경제발전을 통해 국민생활과 교육수준을 높이고, 의식구조가 변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가 착안한 ‘따라잡기 경제발전’은 근대화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경제성장 없는, 산업화 없는 근대화 민주화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 민주주의에 불과합니다.
박정희는 관념론적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실학적 물질 바탕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따라서 이른바 민주화 세력들이 박정희를 독재자로만 매도한다면 그들이야말로 거꾸로 역사에서 소외될 것입니다.
이용후생의 신화정권!
박정희 정권은 국가의 생산력이라는 개념으로 볼 때 역대 어느 정권보다 획기적 신화적인 정권입니다.
이용후생 측면에서 국민의 의식주 개선과 소득향상에 가장 충실했던 정권입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과학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공업이 강조되고 문화의 물질적 하부구조가 새로운 기반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2차대전 뒤 독립한 나라 가운데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이는 압축성장과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우리민족의 저력을 증명합니다.
철저한 군인정신에서 화랑정신을 부활시킨 박정희는 민족주의를 기초로 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제시
그 구체적 실천으로 ‘새마을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에르하르트 서독수상의 눈물!
한국경제를 일으키자면 포항제철 울산공업단지를 세우고, 배(조선)도 자동차도 만들고, 반도체 IT산업도 육성해야 하는데,
우리에겐 돈이 없었습니다. 박정희는 반대와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한일회담 대일청구권 문제를 관철,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아냈습니다.
그때 우리에겐 일자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머나먼 서독으로 우리 간호사 광부를 보내야 했습니다.
한국 간호사들은 시체를 닦고, 광부들은 지하 4,000m 지열 속에서 석탄을 캐내야 했습니다.
이를 위문하고 차관을 구하려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는,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고는 울음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과 간호사, 광부들의 눈물로 강당 안은 곧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그 광경을 TV로 지켜보던 에르하르트 서독수상이 눈시울 붉히며
“아! 저런 민족, 저런 지도자가 있는 나라라면 우리가 차관을 줬다가 돈을 떼여도 좋다” 외쳤다 합니다.
경제혁명! 새마을운동! 경부고속도로건설!
1970년 농가의 80%는 초가지붕이었고, 전기 들어오는 집은 겨우 20%였습니다.
박정희가 ‘근면, 자조, 협동’을 내세워 이끈 새마을운동은 이런 농촌의 인프라를 다지고, 농가소득을 월등히 증가시켰습니다.
오늘날 관념적 자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 새마을운동은 아직도 유효하며
거창한 민주주의나 통일주의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입니다.
1970년 7월 7일에는 서울~부산간 고속도로가 착공, 2년 5개월 만에 개통됐습니다.
건국 이래 최대 역사로 총공사비는 국가예산의 23.6%에 이르렀으나,
km당 약 1억 원으로 전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유례 없는 싼 가격이었습니다.
기차로 15시간 걸리던 것이 4시간으로 줄었고,
그에 따라 자동차산업이 발전하고 물류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경제발전 기폭제가 됐습니다.
김대중은 기공식날, 양재동 공사장 기중기 앞에 드러누워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면 나라 망한다고 온몸을 던져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민주화를 빙자한 정치선동꾼들 온갖 방해에도
백년을 내다보며 굳세게 밀고 나아가 국가산업의 대동맥을 완성했습니다.
양날의 칼 중화학공업 핵개발 도전!
시월유신이 공포된 1972년, 중국.북한.아프리카 국가들의 국민탄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민주주의 본산 영국은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연방선거권을 박탈하고 재판받을 권리도 주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부르짖던 케네디 대통령과 킹 목사가 한낮에 암살당하고,
반민주적 반인권적 인종차별이 버젓이 자행되었습니다.
그런 세계 상황 속에서 박정희는 한국의 바람직한 민주화 구현수단으로 경제발전부터 추진했습니다.
그가 유신과 중화학공업이라는 ‘양날의 칼’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의 기적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경제철학 밑바탕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시장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시장의 이점을 철저히 이용했습니다.
둘째, 놀라운 수완으로 기업가를 통제했습니다.
그 깐깐한 이병철과 배짱 좋은 정주영도 자신 없어 못하겠다는 것을
박정희가 윽박질러 만들게 한 게 오늘 세계제일 삼성전자 반도체.현대조선.현대자동차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돈 벌어들인 대통령
경제와 과학에 남달리 뛰어난 박정희는
기업인과 과학기술자들을 후원 한국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대통령이지만, 돈 자체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청빈했습니다.
청와대 화장실 양변기 물통엔 벽돌을 넣었고 에어컨 대신 부채를 썼습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은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한국이 경제개발에 성공했을 거라 했지만,
그들의 부패정치행태 경제구상으로 밀고 나갔더라면 세계적 기업 삼성.현대.LG의 오늘이 있었을까요?
박정희가 떠난 지금 한국정치는 민주주의를 구호로만 외치는 함량부족 정치인, 이익집단 군중선동, 포퓰리즘 등으로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유신시절 재야그룹의 중심인물 백기완은 이런 말로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박정희는 우리 같은 운동권들을 못살게 했지만, 당장 민주화를 부르짖는 정치꾼들은 국민 3천만 명을 못살게 했다.”
1970년 사상계 오적(五賊)필화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저항시인 김지하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요즘은 오적보다 더 무서운 오십적, 오백적(五百賊)이 설쳐요. 여러 부류 사람들이 온갖 도둑질을 하죠.
내 나이 72세에 오백적을 쓰고 또 감옥에 가야 합니까!” 일리노이대학 교수 김상기는 박정희의 위대함을 이렇게 정의 내렸습니다.
“그는 오로지 철두철미 권력의 논리만을 따라 통치권을 극대화하여 경제개발을 박력 있게 이끌었다.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 절대빈곤국가에서 최소한의 물질적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세계인들에게 심어주었다.”
박정희를 벤치마킹한 덩샤오핑!
세계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박정희를 벤치마킹 국가경제를 일으키려 노력합니다.
덩샤오핑은 박정희의 외교.경제정책을 본받아 실사구시 개혁개방 전략을 구사,
미국과 협조적 외교관계를 유지 중국을 다국적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지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천안문사태 때 탱크군단을 동원, 민주화를 열망 광장에 운집한 100만 학생시민에게 발포해 2천여 명을 사살,
1만 2천 명 부상자 참사를 빚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그를 천하대란에 빠진 나라를 구한 은인으로 추앙합니다.
푸틴은 공산체제를 개방한 러시아가 경제난에 빠지자 박정희 경제정책 관련 서적들을 연구,
경제를 살려낸 공적으로 대통령에 재선되었습니다.
리콴유는 국민의 인권.언론을 통제, 길거리에 휴지 한 장 버려도 곤장 20대,
마약소지자는 사형 무시무시한 형벌로 국민을 다스려 싱가포르를 아시아 최고 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모두 강력한 통치를 펼쳤지만 국민은 그들을 독재자라고 비난하지 않으며 나라경제를 살린 영웅으로 우러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박정희는 스러져가는 국운을 되살려 세운, 질곡의 5천 년 ‘우리 역사가 낳은 지도자’입니다.
고조선 단군 때부터 내려온 한민족 얼에 열정의 불을 지핀 프로메테우스입니다.
한국인은 신명이 나면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가 작사작곡한 ‘새마을노래’로 국민들의 신기(神氣)를 불러일으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로써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박정희 비전의 핵심은 “비르투(Virtu)가 포르투나(Fortuna)를 이긴다”는 마키아벨리의 명제로 요약됩니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갑작스런 정치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가장 훌륭한 정치능력이라고 했으며,
이것이 바로 ‘비르투’입니다.
남성적이고 지도자적인 덕목 또는 전사적 기질을 뜻하는 비르투가
우연과 불확실성의 상징인 포르투나를 극복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신념’으로 ‘운명’을 이겨낸 박정희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본보기입니다.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치다!
민족시인 이은상이 말했습니다. “박정희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해 놓은 인물로 역사가들이 평가할 것이다.
성군 세종은 한글창제를 비롯 내치(內治) 외치(外治)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나 백성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성웅 이순신은 적과 맞서 싸워 이긴 장수이며 자기 몸을 죽임으로써 나라를 구했다.
그러나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백 번 싸워 백 번 다 이김이 최상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으뜸이라 했다.
오늘 남북한 체제경쟁에서 박정희는 북한의 김일성을 싸우지 않고 이긴 사람이다.”
박정희는 1970년대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자 마침내 자신감을 갖고 유신을 단행, 중화학공업과 핵개발에 들어갑니다.
박정희! 그라고 어찌 인간적 결함과 실책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오늘 우리가 박정희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가 백척간두 휘몰아치는 광풍 앞에 결연히 맞서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고 이 나라 이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인의 마음에 신바람을 불어넣은 「불굴혼 박정희」를 찾아갑니다.
박정희의 각오
나는 사람들이 한번도 치우려 하지 않는 겹겹이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오염된 지역 전체를 삽으로 퍼내듯이 모든 사회악을 뿌리 뽑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홍수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헌정제도를 운영하면서 과거의 행동을 겸허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지나친 비능률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지는 않았을까?
때때로 자유를 방종과 혼돈하지 않았을까?
질서와 기강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독재라는 이름으로 비난하지 않았을까?
파쟁과 갈등을 민주주의로 착각하지 않았을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란 탄탄한 경제적 바탕이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
경제는 인간생활에 있어서 정치나 문화보다 중요하다.
민족우선주의 정책과 경제 제일주의 정책을 우리 사회의 새로운 리더십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경제제일주의, 건설우선주의 그리고 노동의 신성시 등의 가치는 더욱 고양되고 북돋아져야 한다.
혁명의 기본적 요소는 한국의 산업혁명을 단행하는 것이었다.
나의 주 관심은 경제혁명이었다.
인간은 우선 먹고, 숨쉬고 나서 비로소 정치, 사회,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 나를 민족의 제단에 바친다.
세계 지도자들의 평
민주화란 산업화가 끝나야 만 가능한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된다.
이를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앨빈 토플러/미래학자
그의 인권탄압이나 독재정권은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진정으로 국력을 키웠다.
그는 다른 후진국 지도자와 달리 부패하지도 않았다.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교수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의 목표는
자립경제력을 갖춘 현대국가의 건설이었다.
그는 성공했다. 박정희에 관한 자료를 모두 수집하라!
푸틴/러시아대통령
광둥성은 아시아 네 마리 용,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의
경제발전, 사회질서, 사회 정세도 따라붙어야 한다.
특히 박정희를 주목하라!
덩샤오핑/중국정치가
러시아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다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고 있잖은가?
박정희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키신저/미 전국무장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이룩한 성과 가운데 가장 놀라운 기적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 지도력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이다.
피터 드러커/경영학자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중국의 덩샤오핑,
한국의 박정희를 꼽겠다.
리콴유/싱가포르 수상
국내 인사들의 회고
김영삼, 김대중은 박정희가 보여준 국가경영의 철학과 비전, 국가관리 능력은 물론 도덕, 윤리적 수준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
이 두 대통령은 직접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자식들이 불법축재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국민의 사회적 근간을, 국가의 목표들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흐려놓았다.
- 조이제,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
박정희는 케네디·닉슨·레이건을 합쳐놓은 이상적 대통령이었다.
그의 STATECRAFT는 일제 만주건국 프로젝트 현장에서 체득하며 쌓은 꿈이었다.
격동의 시대를 뚫고 나가는 쾌도난마식 국가개혁 ‘하면된다’!
국민의 힘을 용솟음치게 한 그 피·눈물·땀 감동벅찬 드라마가
역사의 파수꾼 고산 고정일이 10년의 각고세월을 바쳐 대하소설로 펼쳐냈다.
- 동명대학교 총장·KBS 전 사장 박현태
거리는 실직자와 거지들로 득실대고, 농민과 노동자는 기아와 궁핍으로 고통 받고 있다.
물가는 오르기만 하고 거의 모든 공장은 폐쇄상태라 생산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강도와 절도가 날뛰고 있지만 치안능력은 무기력하다.
국민 모두가 불평을 늘어놓거나 비탄에 잠겨 있다.
그 때 박정희가 나타났다.
- 서울대학교 음대 명예교수 이인영
푸르른 오월 하얀 목련을 나는 좋아한다.
목련은 부시게 빛나면서도 결코 자태를 현란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육영수 여사 첫 만남에서 나는 그 목련을 떠올렸다.
늘 불우한 사람들 곁으로 다가서려 애쓰던 그이.
대통령의 격정을 어루만져 주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이.
세찬 바람에 뚝뚝 목련이 지듯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 나는 고향의 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 원로작가 박순녀
한국이라는 거대기업 CEO 박정희는 국가경영을 관리했다.
그는 조국근대화의 확고한 철학으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그것도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그의 이런 개혁이 부국강병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국민의 힘을 극대화, 나라를 이끌었다.
박정희는 조국에의 마지막 헌신 핵개발 도전 목숨을 바침은 비장한 충격이었다.
- 중앙대 전예술대학원장 작가 신상웅
춥고 배고픈 서민들이 남대문시장으로 몰려들어 미군이 먹다 버린 꿀꿀이 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검정물 들인 미군점퍼로 추위를 견딘 시절. 육여사는 자녀들 옷을 그 남대문시장에서 사 입혔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찾아 민심듣는 그를 떠올리면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노래가 귓가에 울린다.
오늘 이만큼 사는것 박정희 육영수께 감사한다.
- 예술원회원·전이화여대 음대교수 작곡가 이영자
6.25 전쟁 때 한 굶주린 여인이 밥 한그릇을 후다닥 해치우더니
그때서야 등에 업고 있던 아이 생각이 나서 젖을 먹이려는데 벌써 아이는 죽었드래잖아요...
세끼 굶으면 도둑질 안하는 사람 없다고 했는데...
먹을 것이 없어, 풀 뜯어 먹고, 나무껍질 벗겨 먹으면서, 몇달이고 기약도 없이 허기진 삶을 살아본 적 있나요?
그런데도 평생을 못먹고 굶주려도 좋으니 민주화만 되면 된다는 사람 있나요?
오죽하면 북한 사람들이 흰 쌀밥에 고깃국 한번 먹었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말할까요?
박정희를 욕하려면 우리민족의 지긋지긋한 굶주림을 벗겨 준 그의 행적을 알아본 후 해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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