奧貫智策, 1786年(天明六)-1812年(文化九)
武州幸手 産으로, 어려서 坊門에 들어가다. 성격은 별났으나 敏捷한 少年으로 元丈이 크게 囑望하였다. 후계자로 된 文化九年 九月二十七日 二十七세 五段으로 逝去한다.
本因坊智策으로 記錄된 資料는 없으나, 墓所가 坊家의 菩提所인 東京鶴鴨의 本妙寺에 있는 점으로 보아, 事實上 本因坊元丈의 후계자로 여겨진다. 死因은 不明. 最後의 棋格은 五段이었으나 七段의 實力은 충분했다고 한다.
1803年(享和三) 十七세 때, 在野의 强豪 山本源吉(道佐)에게 先互先에서 定先으로 치수가 떨어졌던 것을 크게 부끄럽게 여겨, 工夫에 工夫를 거듭하여 五年後에는 遠州浜松의 源吉을 재방문하고 互先十一局을 五勝五敗一無로 끝냈다. 그 무렵, 丈和는 出羽國 鶴岡으로 보내져, 長坂猪之助와 對局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坊家의 將來를 맡길 二人을 경합시킨 것으로 보인다.
1805年(文化二)頃, 智策은 元丈과 天下를 양분하고 있는 安井知得과 集中的으로 對局한다. 이는 坊家의 繼承者로서 英才敎育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라이벌인 丈和의 棋譜가 나타나는 것은 二年後 長坂猪之助와의 二十一番碁가 처음이다. 丈和가 元丈의 正式 후계자로 되는 것은 智策이 죽고난 七年後의 일이다.
智策은 才能이 일찍부터 開花하여 丈和, 舟橋元美를 항상 앞질러 왔다.
安井門下의 鈴木知淸과의 對局譜 百局을 모은 [對手百談] 全四卷이 1809年(文政六)에 刊行되었다. 知淸은 知策의 芸와 人品에 깊은 感銘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