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보道知, 1690年(元祿三)-1727年(享保十二), 명인기소
토쿄에서 태어나다. 성은 神谷氏. 道策의 아들이란 말도 있으나, 道策과는 45세의 나이차가 있다. 三世井上 因碩을 계승한 道節의 후견으로, 道知 나이 13세에 가독을 이어받고, 五世혼인보 道知로 어성기에 첫 출사했다. 트레이드(移籍)하는 문제로 四世安井 仙角과 쟁기를 두어 3연승으로 물리치다. 제1국은 끝내기의 묘수로 유명하다.

第一局 道知 ○-× 仙角 (先番一目勝)
第二局 道知 ○-× 仙角 (先番十五目勝)
第三局 道知 ○-× 仙角 (白番三目勝)

후년의 어성기에서는 흑이면 몇집을 이기고, 백이면 일부러 2-3집을 졌다고 하나, 어쨌든 수행시기에 명인 因碩에 대항한 道知의 십번기는 열기도 뜨거웠다. 1710年(寶永七) 오키나와 기사 屋良里之子와의 3점국은 하수다루기의 명국으로 이름이 높다.

第一局 道知 ○-× 因碩 (三目勝)
第二局 道知 △-△ 因碩 (無勝負)
第三局 道知 ×-○ 因碩 (二目勝)
第四局 道知 ×-○ 因碩 (三目勝)
第五局 道知 ○-× 因碩 (八目勝)
第六局 道知 ×-○ 因碩 (三目勝)
第七局 道知 ×-○ 因碩 (不計勝)
第八局 道知 ○-× 因碩 (四目勝)
第九局 道知 ×-○ 因碩 (二目勝)
第十局 道知 ×-○ 因碩 (七目勝)

명인 因碩(道節)이 죽은지 2년후인 1721年(享保六) 11月,
道知는 32세로 다른 3가에서 추천을 받는 형식으로 명인기소에 취임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道知는 좋아하기는 커녕 道節때문에 10년이나 명인기소가 늦었다고 탄식을 했다. 道知의 명인기소의 취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잡음도 없었을 뿐 아니라 타 3가에서는 그러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도 이제 어성기가 제대로 될 것이니 얼마나 좋은가 했다고 한다. 道知의 실력은 가히 발군이어서 다른 3가에서는 대항할 선수가 없었다.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이었다.
道知는 37세의 나이로 급사한다. 사인은 복어의 독.
道策 이래 혼인보家의 황금시대가 끝나고 바둑계는 다시 혼미기에 들어선다. 1716年(享保元)에 장군 吉宗에 의해 오사카 冬陣의 고사를 쫓아 어성기는 11月17日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