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진화
기원 후 그리스도교(Christianity)라는 새로운 종교가 태동되면서 예수(Jesus)라는 신이 창조된다.
예수라는 새로운 신(神)이 창조된 후 예수는 무려 2,000년 동안 인류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초창기 그리스도교에서는 관념적 존재였던 예수가 로마 카톨릭을 거쳐 신적인 존재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 정의는 르네상스, 계몽기를 거쳐 무려 1,500년 간을 장수하였는데 근대 신학에서는
다시금 그리스도교 초창기에서 처럼 여러 형태의 관념적인 존재로 되돌아 가고 있다.
그리스도교 초창기의 교부들과 여러 변증가들이 예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예수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신으로 인정되고 삼위일체의 하나로 확정되었는지 표로 정리한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예수를 재조명한 글들도 간략히 첨언한다.
제1차 공의회(종교회의)
325년, 니케아
주관: 콘스탄티누스1세
(태양신숭배자)
- 예수는 투표에 의하여 신(神)이 됨.
- 신성(神性)을 부인한 아리우스파 파문(破門), 유형당함.
-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으로 성자와 성부의 본질적 일체설이 채택됨.
- 당시 회의 주재자 콘스탄티누스 1세는 개종전이었음.
제2차 공의회
381년, 콘스탄티노플
주관: 테오도시우스1세
- 성령의 신성함을 옹호.
- 니케아공의회의 합의를 공인.
-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의 삼위일체가 결정됨.
제3차 공의회
431년, 에페소스
주관: 테오도시우스2세
- 마리아를 신(神)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
제4차 공의회
451년, 칼케돈
주관: 교황 레오1세
- 예수는 신(神)이면서 인간(人間)이라는 즉
- 신성과 인성이 함께 있다는 양성론(兩性論)으로 결정 (칼케돈 신조).
- 예수는 신성(神性)만 있다고 단성론(單性論)을 주장한 유티키아파를 단죄함.
제5차 공의회
553년, 콘스탄티노플
동로마제국의 황제
주관: 유스티니아누스1세
- 예수의 십자가형이 인류의 죄를 대속한 것이라고 결정을 함.
- 사탄이 타락한 천사이고 인간을 죄짓게 했다는 원죄론 확정.
제6차 공의회
680년, 콘스탄티노플
동로마제국 황제
주관: 콘스탄티누스4세
- 단성론(單性論)을 배척하고 양성론(兩性論)으로 로마카톨릭 교회와 화해함.
- 단의론(單意論)을 주장한 동로마 호노리우스 교황을 이단으로 정죄함.
  (單意論 : 예수는 신성(神性) 인성(人性)이 다 있으나 의지는 하나라는 주장)
- 양성론(兩性論)과 양의론(兩意論)으로 결론짓다.
제7차 공의회
787년, 니케아
동로마제국의 황후
주관: 이레네2세
- 성화상(聖畵像)숭배, 그리스도 유물(遺物)숭배.
- 유물을 제시하지 않으면 어떤 주교도 교회건물을 헌당할 수 없게 함.
- 성자숭배, 죽은 성도와 순교자들에 대한 기도가 공인됨.
제8차 공의회
869년, 콘스탄티노플
- 아이콘(聖畵像) 논쟁을 둘러싼 동·서 교회의 대립.


그리스도교 초창기의 예수에 대한 개념
클레멘트 주교(30-96) : 고린도에 보내는 첫번째 편지에서 예수의 부활 대신 불사조 신화를 언급하다.
이그나티우스(50-117 ) : 트랄리안에 보내는 서신에서 육체적 예수를 최초로 언급하다.
파피아(70-155) :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살려낸 사람들은 트라잔 황제( 98-117) 시대까지 살았다.
저스틴(100-165) : 기초경전을 복음서라 부르지 않고 사도들의 회고라 칭하다.
이후 하나님의 아들(Logos)은 형상을 받아 사람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라 칭함을 받았다.
저스틴의 그리스도는 지상의 예수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적 그리스도를 지칭했다.
티오필러스(180) :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진리는 하나님에 의해 성령으로 계시되었다고 주장하다.
예수 또는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한 번도 기록한 적도 주장한 적도 없다.
아테나고라스(2세기) : 황제에게 그리스도교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믿는 종교라고 설명하다.
디오그네투스 서신(130) : 하나님이 그의 아들(Logos)을 보냈다고 하면서도 예수의 언급은 없다.
타티안(110-172) : 4 복음서를 통합한 복음서를 내다.
예수, 그리스도, 크리스찬이라는 단어는 일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많은 부분을 하나님의 아들(Logos)에 대한 설명으로 할당하고 있다.
미누시우스 펠릭스(155) : 크리스찬이라는 단어는 빈번히 썼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쓴 적은 없다.
이레니우스(120- 200) : 예수는 장수하였고 선생으로서 역할을 끝낸 후 영광되게 은퇴했다.
터툴리안(160-220) : 우리가 태양을 숭배한다지만 너희들도 그러하지 않느냐?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예수에 대한 개념
허만 라이마루스(1694-1768) : 실제 예수는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칼 바하르트(1741-1792) : 예수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았다.
누가와 니고데모가 무덤에서 예수를 구해내고 누가의 약물치료로 예수는 건강을 회복한다.
몇몇에게 몸을 나타내 보인 후 에쎄네파 근거지로 은퇴하여 오랫동안 장수하다 늙어서 돌아간다.
브루노 바우어(1809-1882) : 예수 탄생 이야기는 문학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이다.
알버트 슈바이쳐(1875-1965) : 예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발견될 만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
칼 바르트(1886-1968) : 역사적 실체의 탐구가 우리의 믿음에 하나도 보태주는 것이 없다.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 예수의 실체를 발견한다면 오랜 믿음이 오히려 환상이 될 것이다.
윌슨 - Jesus: A Life (1992) : 엄격히 말해 예수의 실체를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1세기경의 유태인이 예수를 메시아로 자칭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예수는 여인들과 함께 하기를 좋아 했으며 아마도 결혼하였을 것이다.
예수는 술을 많이 먹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으나 사회질서를 문란시켰다는 증거는 전무하다.
쟌 크로산 - The Life of Jesus (1994): 예수는 유태인이었고, 농부였고, 방랑족이었다.
출처 - http://kr.blog.yahoo.com/cocolandkr/257.html,
http://zionkorea.com.ne.kr/catholic/02.htm

그리스도인들이여 화내지 말지어다.
종교는 종교요, 신은 신이다. 좋고 필요하면 믿으면 되는거지 역사적 탐구는 학문이다.
산타크로스가 있고 없음을 따지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생활에서 있어야 좋으면 그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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